길에서 만나다
나는 2008년 2월 23일, 브라질의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어느날 갑자기 결심해버린 6개월간의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의 난 취업준비에 바빴던 대학교 4학년이었고, 언제부턴가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메뉴얼을 따라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일상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 너무나도 뻔한 일상을 벗어나고자 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나의 여행을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 여행은 남들이 이미 방문했거나 겪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계획되어 있었고, 난 마치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기려는 듯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댔다. 그것은 내가 미리 알았던 것, 생각했던 것, 기대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이 품고 있었던 여행에의 열망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고 있었음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남미여행을 시작한지 겨우 열흘정도가 지났던 어느날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버스터미널에서 내 배낭을 도둑맞게 된 것이었다. 그 배낭에는 내 여권과 모든 현금, 카드, 카메라, 옷가지 등 내 여행을 책임지기 위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었고, 도난 사건 이후 내게 남은 것이라곤 주머니속의 50페소와 음악을 듣기 위해 휴대하고 있었던 MP3플레이어가 전부였다.
이 사건은 내 여행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주었다. 난 내가 계획했던 남미여행의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인도된 나의 새로운 여정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많은 일들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난 배낭을 도둑맞은 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주정도 일을 하며 체류했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앞두고 다시 한번 가지고 있던 모든 100페소를 도둑맞았고, 그럼에도 중고자전거를 타고 상파울로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고,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닿았을 때 자전거를 또다시 도둑맞았고,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고, 또 히치하이킹을 했다.
그리고 대형마트의 주차장에서, 경찰소의 주차장에서, 공원에서 , 길거리에서 , 길에서 만난 한여행자의 텐트안에서, 성당에서, 소방서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숙박소에서 잠을잤다. 물론 가끔 날 도와주는 좋은사람들의 집에서 잠을자는 기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