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파는 약국
서울 강북구 한 주택가에 자리한 '행복약국'에는 30년째 그 자리를 지켜온 약사 이정호가 있다. 기억력 저하로 고민하던 그에게 어느 날 기적 같은 해결책이 나타난다. 바로 새로운 기억력 향상제였다. 약을 복용한 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이정호는 신뢰하는 단골 고객들에게도 이 약을 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약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밀이 숨어있었다. 불쾌한 기억들이 선택적으로 지워지면서 사람들의 관계와 인생이 조용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5년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던 아들 민준이 우연한 계기로 고향에 돌아온다. 그가 발견한 것은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의 이상한 변화였다. 과거의 갈등과 상처들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모습에 민준은 섬뜩함을 느낀다. 표면적으로는 더 평화로워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었다. 민준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아버지가 취급하는 의문의 약물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을 구하기 위한 위험한 진실 추적에 나선다.
약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들은 독자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다. 기억력 향상제라고 믿었던 약물의 진짜 목적과 그것을 유통한 사람의 숨겨진 의도, 그리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작가는 치밀한 복선과 반전을 통해 기억의 소중함과 갈등 해결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히 가족 간의 상처와 오해가 어떻게 진정한 소통을 통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인간관계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질문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이 소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가족의 사랑에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버지와 상처받은 아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묵묵히 사랑을 지켜온 어머니의 이야기는 모든 가족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동을 전한다. 특히 아들의 꿈이었던 아이스하키와 동네 아이스링크가 가족의 화해와 이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려지는 부분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기억을 파는 약국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기억의 진정한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