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유리파편 모자이크 1권

유리파편 모자이크 1권

저자
유정 저
출판사
그래출판
출판일
2015-03-05
등록일
2016-03-03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MB
공급사
YES24
지원기기
PC PHONE TABLET 웹뷰어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현황
  • 보유 2
  • 대출 0
  • 예약 0

책소개

평생에 걸쳐 산산조각 나 버린 남자, 에르민.
그 남자를 다시 온전히 만들려는 여자, 레티시아.

그가 그녀를, 그녀가 그를 사랑할 수록 그들의 미래는 점점 끝 모를 수렁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서로를 놓을 수 없는 까닭은…….

* * *

“너 따위가 감히 이 가문의 이름을 가졌다는 건,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지. 그렇지 않니?”
“…….”
“왜, 내가 말하는 게 고까운 게냐? 버릇없는 것.”
상대가 하는 모든 말은 그저 트집인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제 앞에서 사나운 말을 뱉어 상처를 입히려 노력하는, 대외적으로는 그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의 말을 그저 가슴에 새기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아무리 남자에게 지독한 말을 쏟아 낸다 하더라도 어쨌든 그녀는 ‘어머니’니까.
하긴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남자의 눈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의 입에는 더러운 걸레 같은 재갈이 물려 있었으며, 두 손은 뒤로 묶여 있었으니까. 그대로 무릎 꿇고 앉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남자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가냘픈 그의 ‘어머니’는 아주 간단하게 몇 마디 명령만으로 한 손만으로 제 목숨을 거둬 갈 만큼 큰 자신의 ‘아들’을 제압해 묶어 버렸다. 반항 따위는 용납하지 않았다. 아니, 남자는 반항을 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정확했다. 반항을 하는 게 오히려 고통의 시간을 길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은 그저 매질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매질이 나았다. 때때로 그의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저 짐승이 되고자 했다. 아무리 애원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몸을 농락하곤 했다. 그렇게 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보며 즐거워하는 짐승이었다. ‘어머니’라는 사람과 그딴 짓거리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가혹한 매질을 당하는 쪽이 백 배, 천 배 나았다.
오늘도 ‘어머니’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어린 아들이 아카데미에서 본가로 돌아오는 날이면 특히 과음을 했다. 그런 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가족들도, 하인도, 하녀도,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안 체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 되면 아들을 별채로 불러냈다. 아들은 순순히, 착한 송아지처럼 어머니의 부름에 따라 별채에 가 이렇게 무릎을 꿇고 ‘벌’을 받았다. 왜 받아야만 하는지 모를 벌이었지만. 그럴 필요도, 이유도, 가치도 없는 일이었지만.
공기를 찢어 내는 소리가 귓가를 울림과 동시에 남자는 벌거벗은 몸에 채찍이 와 휘감기는 걸 느꼈다. ‘어머니’는 씩씩대며 아들의 헐벗은 허벅지와 등, 둔부를 사정없이 채찍으로 갈겼다. 새빨갛고 얇디얇은 선이 그의 전신에 하나 둘 새겨져 갔다. 남자는 재갈을 악물고 신음을 참으려 했지만 잇새로 신음이 조금씩 새어 나갔다. 그의 신음이 무슨 자극제라도 되는 듯, ‘어머니’의 팔놀림이 더 빨라졌다.
마침내 지쳐 버린 듯, ‘어머니’는 들고 있던 채찍을 내던져 버렸다. 그에 맞춰 땀투성이가 된 그녀의 옆으로 어려 보이는 시종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던 어머니는 혐오스러운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모로 쓰러져 헐떡이는 남자를 응시하더니만, 그에게 침을 뱉었다. 그녀의 뜨뜻한 침이 제 벌거벗은 몸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남자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끝났다.
“더러운 종자. 길거리에서 흘레붙는 창녀의 자식 같으니.”
한참이나 욕을 쏟아 내던 어머니는 뭔가 후련하다는 듯 낄낄대며 별채를 휑하니 나가 버렸다. 별채에 남겨진 것은 묶인 채 바닥에 누운 남자와, 아까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던 시종 하나 뿐이었다.
시종의 도움을 받아 옷을 다시 챙겨 입은 에르민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절뚝 본관의 자기 방으로 향했다. 제 손목을 파고들었던 밧줄이 남긴 시뻘건 자국이 문득 눈에 띄었다. 에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제 몸을 파고든 밧줄과, 채찍과,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그를 점점 부수다 못해, 없애고 말리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자 : 유정

머릿속 ‘썰’을 줄글로 풀어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독자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글을 써내려 갑니다.

* 출간작
『이스벨의 손』
『그녀의 휴가』
『유리파편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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