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04 머리말
008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023 하트 모양의 얼?
043 신의 나라 토마스
195 부록: 시와 소설작법의 실마리
GLARA. 2010
Art theraphist.
Ontario College Art & Design
머리말
《샤갈선생》을 출간한데 이어 같은 해에 단편 소설집《크리스마스 목가》를 출간하고 가슴이 설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목가》는 발표 후 책의 내용 중 단편 소설 「불안의 계단」에 대해 특강 요청이 있어 지역의 문화대학과 기업체 등에서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으로 행복의 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전편들에서 2회에 걸쳐 부록으로 정리한 「소설과 시 작법의 실마리」에 대한 강의 요청과 격려에도 감사를 드린다.
세 번째 소설 《신의 나라 토마스》는 원래 시로 출발한 작가의 운문적 필담여행이 긴 숨을 마신 후에 바다를 한 바퀴 거슬러 돌아오는 작업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회귀의 본능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작가를 지배하는 것은 포에지(poésie.詩)의 강이다.
시간과 공간의 의미는 편협하므로 확장을 전제로 한다. 작지만 단단한 것과 크지만 듬성한 것이 모두 개성이라면 대소장단이 진리의 가늠자는 아니다. 다만 작품의 밀도나 질량이 성실하기를 바랐다. 시(詩)는 문예전반과 대응하면서 예술의 최고위에 있으며 최후의 부문을 형성한다. 인간의 정신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차원과 시공간을 넘는 것은 물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시 또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사명을 띠고 있으므로 신비한 날개를 가진다. 예술가는 축적된 정신 상태를 산다. 따라서 생각을 형식에 가두는 것은 죄악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척후(avant-garde)의 역할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나라에는 신이 살고 신의 나라에는 토마스가 산다.
축구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 모두가 승리를 기원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신은 지켜보기만 했다. 어떤 이는 신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고 했고 관망하는 신을 원망하기도 하였지만 신은 어디에도 보이지는 않았다. 토마스의 자유 의지들을 지켜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경기의 규칙을 정해주고는 사라진 뒤에 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경기가 끝났을 때 모든 토마스들은 단독으로 신을 만나기로 약속되어있었다.
토마스는 과거에서 미래로 또 현재에 이르는 시간과 공간 여행을 거쳐 이제 신비의 영역에 머물기로 하였다. 인간이 오감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우주전체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99%에 대한 탐구가 바로 신의 나라에서 토마스가 해야 할 일이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 볼 수 있다면 완전한 행복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퀴노의 토마스는 시간과 공간 여행을 한다. 오늘날 한국의 평범하고 문제 많은 가정에 속하지만 시대와 연옥을 자유로이 왕래하며, 또 여행의 타당성에 매우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의 신념 안에는 은총의 빛인 신앙과 자연의 빛인 이성이 조화를 이룬다.
토마스의 나라에 우연이란 없다. 작은 사건 하나도 필연이다. 악도 우연히 발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을 위해 이용된다. 따라서 고통도 복이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과,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처지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행복에 이르는 지혜다.
신의 나라 토마스는 인간의 해석 가능한 영역뿐 아니라 오랜 성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영역에 속한 지혜를 캐내려고 한다. 그리고 신비한 영역 속에 깊숙이 숨어있는 나라를 여행한다.
슬픔과 우울은 악마의 다른 이름일지언정 시련과 고독은 예술의 재료와 도구가 된다. 시련은 사상과 감정을 농밀하게 하며 고독은 소설이나 시와 같은 표현의 도구를 벼리는 공간을 마련하여준다. 신은 선물을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 반면에 지나친 부요는 타락이나 쾌락으로 이르는 넓은 문이 되기가 쉽다. 풍요와 행운으로 웃고 있으나 죄에 빠져 불행한 자와 시련으로 울고 있으나 행복한 자는 대비된다. 따라서 원수는 은인이며 고통은 복이다. 그리고 신의 나라 토마스에게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위하여 고통과 원수를 용서할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