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금도 살아 있다. 용봉동의 삶
흔들거리는 기억의 갈피 속에서 물살을 친다
그건, 가장 처절한 몸 부대낌이 어떻게
정말 어떻게 해서 꽃물결이 되는가를 일깨워 준다
그때 우리가 맞이한 기나긴 하루 햇살
등 굽은 당신 목덜미를 내려비추고
마주하는 육신과 육신 속 분노의 실핏톨이 번져,
이 골목 저 골목 따라 떼무리지어 일어서더니
아아 용봉동 찬 벌판에서 바다라보이던 별들,
수백 수천 개씩 껴안겨
내 가슴 밀어젖히며
황토빛으로 일렁일 때
바로 그날, 앞서 떠난 벗들이 보이고
쓰러져 피 흘리는 내 이웃들이 보이고
아버지, 형님, 누이들이
모서리가 닳지 않은 돌멩이를 들고 떠났다
가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그해의 용봉동 거리
쑤근대다 쓰러지던 들풀들만 꺼이꺼이 울었네
그 울음 지금도 남아 있다, 살아 있다
가슴 벅차 차마 못 누를 아아 그해의 삶! 용봉동의 핏빛 삶!
여전히 끝날 줄 모르는 내 삶!
너는 가서 돌아올 줄 모르고 난 이렇게 살아...
(<세월아, 삶아> 두리,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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