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플라톤의 『국가론』은 「정의에 관한」이란 부제가 붙었으나, 정의에 관한 것 이외에도 시론, 인생철학, 선악에 관한 가치관, 존재론적 형이상학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국가론』은 소크라테스가 케파로스 집에 가서 거기서 이루어진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그대로 플라톤이 보고하는 간접적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1권에서 각자 정의에 관한 관점을 피력하고 서로 논쟁하는 가운데 정의의 문제는 그대로 어떻게 다룰 수 없이 어렵게 되어 버리자, 제2권에서 그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강력하게 소크라테스 자신의 해답을 요구하게 되고 부득이 소크라테스는 직접적 정의를 내리는 대신 개인에 있어서의 정의의 확대된 모습을 국가에 있어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상국가의 건설작업으로 들어간다. 제3권과 4권에서 이상국가의 근본은 통치자의 인격 양성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교육이 시가, 음악, 체육에 걸쳐 자세하게 검토된다.
제4, 5권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급과 그 역할이 설정되고 이것이 또한 개인에 있어서의 정신의 세 가지 기능과 대치되고 이로부터 지혜, 용기, 절제, 정의에 관한 네 가지 덕이 규정된다. 제6, 7권에서 선의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는 철학적 방법론이 전개되기도 한다. 제8, 9권에서 정의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동시에 유리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끝으로 제10권에서 시가 연극의 본질이 철학적 입장에서 고찰된 다음 정의로운 자에 대한 보답에 관련시키면서 에르의 이야기가 전개된 다음 끝을 맺는다. (서소옥)
저자소개
(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이었던 코드로스의 후손인 아버지 아리스톤과 초기 헬라스 입법가인 솔론과 연결되는 어머니 페릭티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년시절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었으나, 현실정치에 가담하라는 과두파들의 권유를 물리친다. 과두정권이 몰락한 후 민주정권이 들어섰으나, 뜻밖에도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기원전 399년 사형을 당하자, 플라톤은 잠시 메가라로 피해 있다가 이후 12년 동안 이집트,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철학 및 학문 일반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관인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했다. 아카데메이아에서는 좁은 의미의 철학만이 아니라 수학이나 수사학 같은 다양한 분야들을 탐구하였다. 특히 아카데메이아는 수사학 교육에 집중된 이소크라테스의 학원과는 달리 절도있는 공동생활과 학문적 논의, 그리고 헬라스의 현상 타파를 위한 참된 지적 지도자의 배출이 설립 취지였다.
플라톤의 말년에 일어난 주목할 만한 사건은 그가 시라쿠사이의 현실정치에 관여한 것이었다. 플라톤이 60세 되는 기원전 367년 시라쿠사이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가 죽자 그의 처남 디온은 플라톤을 초빙해서 왕위를 계승한 디오니시우스 2세의 마음속에 철인치자(哲人治者)의 사상을 심어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젊은 참주가 정치적 강자인 디온을 시기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67세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그후 13년간 활발히 학문 활동을 하다가 기원전 348년경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철학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서양철학사에서 유명한 이데아설을 제창하였으며, 『파이돈』 『향연』 『국가』 『프로타고라스』 등의 전기 대화편과 『소피스테스』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의 후기 대화편을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