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오랜 침묵을 깨고 2003년 6월에 출간된 「아, 입이 없는 것들」에 이은 이성복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100편의 시는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 독서에서 출발하여 씌어진 시들이라는 점에서 좀 특별하게 여겨진다. 시의 제목 밑에 인용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떠올린 단어나 문장, 이미지, 또는 주제나 세계관을 가지고 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성복 시인이 첫 시집에서부터 줄곧 보여준 삶과 화해하고자 하는 열망, 이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은 계속 이어진다. 이 세상과의 화해를 갈망하는 시인의 사유방식은 선(禪) 수행의 화두 잡기와도 유사해 보인다. 시인은 ‘나’의 모든 선입견과 집착을 내려놓고 처음인 듯 삶의 풍경 하나하나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직접 겪었을 것 같은 에피소드와 거침없는 말투 또한 읽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 때로는 미소를, 때로는 부끄러운 홍조를 띄게 만드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