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
나리는 검은 눈 속에서...
아픔은 없다. 다만 눈물이 마르지 않을 뿐.
피눈물을 뽑아 삶을 휘두른다.
그러나 느려진 이신의 숨소리는 허공만 벨 뿐,
또 베어봤자 곧 되살아나는 어둠에 묻힐 뿐...
지친 숨을 들이키며 검을 거둔다.
그 숨결에 흑기사의 칼은 소리없이 봉으로 변하고,
흑기사는 봉을 수평으로 들어올려 이신의 입 속으로 처넣는다.
앞니가 몽땅 깨어지며 봉은 핏물과 함께 뛰쳐나오고 이신은 덧없이 하늘을 날은다.
꿈을 꾸듯 날아가, 떨어져, 데굴데굴, 눈밭을 궁굴다 구르는 힘에 저절로 일어나 미친 듯이 검을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