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도살장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주인공 빌리가 검안사로 안정된 생활을 꾸려가던 중 유럽의 전장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종작없이 시간여행을 하고, 딸의 결혼식 날 우주인들에게 납치되어 그들로부터 배운 새로운 세계관을 전파하기 위해 괴이쩍은 행동을 벌인다는 줄거리의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비행접시를 통해 보내오는 행성 트랄파마도어의 전보문 형식으로 쓴 정신분열성 소설로, 저자는 2차 대전 당시 행해졌던 포로들의 끔찍한 대량 살육에 대한 한 낙오병의 목격담을 메타픽션과 공상과학과 패러디라는 블랙 유머의 기법을 빌어 풀어낸다. 1960년대 후반 진보를 향한 열정과 암울이 교차하던 미국 사회를 강타했던 이 작품은, 끔찍한 드레스덴 소이탄 폭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빌리의 시간여행을 통해 두려움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부서진 삶으로의 신화적 여행을 선사한다. 통렬하고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는 시종일관 동정심과 도덕훈의 우레같은 울림을 듣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