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그 여덟 번째 이야기
이 책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역사문화사전』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 여덟 번째 책이다. 이 책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옛날에는 어땠을까?’이다. 역사 교과서와 수많은 역사책에서 그 일단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최첨단 사회에서 사는 현대인으로서는 옛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 쉽지 않다.
옛날에도 법적으로 정해진 휴일이 있었을까? 번듯한 집안의 남자와 혼인을 하는 여자는 오늘날처럼 무리해서 혼수를 마련해야 했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으니 경주 사람들이 쓰던 말이 표준어였겠네? 그럼 오늘날의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어였겠구나. 옛날에도 데이트를 했을까? 연애결혼도 가능했을까? 엣날 사람들은 어떤 스포츠를 즐겼을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마땅한 자료를 접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책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 역사문화사전』을 주목해보자.
저자소개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이후 경기도 용인시 용동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으며 교감으로 재직했다. 1990년부터 한국사 관련 저술을 기획했으며, 역사 소설가 이재운 작가와 함께 한국사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MBC 문화방송과 EBS 교육방송 등에 출연,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요?》(1, 2), 《옛날에도 변호사가 있었나요》, 《이황-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6》, 《이이-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27》, 《박은식-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한 역사 인물 동화 40》,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오천년 우리 부자》, 《역사인물백과》, 《깨어나라, 고구려》, 《한국의 인물 시리즈》(7종),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김만덕》, 《LTE 한국사》, 《LTE 세계사》, 《반역의 한국사》, 《밥상 위의 한국사》, 《꾸밈의 한국사》 등이 있다.
목차
1장_ 의식주·풍속
일본 도굴꾼이 만든 고려장|몽골 침입 이후 우리나라 대표 개인 진돗개|왕이 만든 음식, 탕평채와 신선로|관공서인 다방|부동산 중개업소가 된 복덕방|집안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가리키던 거지|고춧가루 없는 김치, 고춧가루 있는 김치|같은 언어를 사용한 고구려, 백제, 신라|‘신체발부 수지부모’라 자르지 않았던 머리, 그렇다면 손발톱은?|백의민족인데 흰옷을 못 입게 해|신라와 고려에서는 남매간에도 혼인이 이루어져|감주가 술이야!|왜군이 지은 최초의 고층 빌딩|소주가 약이라니?|화장은 신분의 상징|우리나라의 봉선화 물들이기가 서양 남자들의 매니큐어|장맛이 집안의 운을 좌우해|남자가 태교를?|절이 국수 공장|먹고살기 힘든 시절 돌잔치를?|작은설인 동짓날|어른 앞에선 벗어야 했던 안경|뚱뚱한 양귀비가 미인?|세상의 중심은 여성이었다|약소국의 희생물, 공녀와 정신대|새해 풍속인 소발|통행금지까지 해제된 정월 대보름날|공무원인 무녀|액세서리는 멋쟁이의 상징일까, 신분의 상징일까?|옛날 여자들의 화장품|상여의 공포(功布)가 최고의 생리대|조상들의 데이트와 연애결혼|임금의 허락으로 이루어지는 양반가의 이혼|서명(Sign)|화장실이 있는 집은 부자|화장실에서의 뒤처리|귀양 간 코끼리|조선시대의 신도시 건설|혼수는 신랑이 준비해야|목욕은 공중목욕탕에서|돼지고기는 발해인들의 주식|외국에 건설된 코리아 타운|옛날에도 공익광고가 있었다|조선시대판 룸살롱|매 맞는 구한말의 집배원|부부가 함께한 출산의 고통|거웃으로 만든 붓|조선시대에는 씨름을 금지하기도|어머니의 성을 따르기도 한 고려시대|일제의 강요로 실시한 창씨개명에 항거하는 방법|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풍속인 순장|침대를 사용한 고구려인|하루에 두 번 먹은 밥|신라시대 여왕의 결혼|한국인 성씨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목화가 들어오기 전 서민들의 옷|옛사람들의 스포츠|우리나라 인구|소나무가 많은 우리나라|양치질에 사용한 칫솔|주막, 목로주점, 색주가|고려시대의 균등 재산 분배|‘서울’은 수도의 호칭|수작 부리다|오렌지족은 옛날에도 있었다|남녀 모두 착용했던 귀걸이|남녀노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어울려 피운 담배|삿갓과 도롱이 그리고 나막신|계란은 임신부 금기 음식|밤에는 빨래를 널지 말라|오른쪽으로 치마를 여미면 상놈?|미용사원 매분구|옛날 여자의 취미 생활|왕비나 후궁, 양반집 부인들의 트레머리|살결 고운 방앗간집 딸|여덟아홉 살이면 혼인을 해|신라시대 귀빈과 아내의 동침|선사시대의 조개무지는 쓰레기장|옛날부터 많았던 무궁화|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천한 이름과 여러 이름을 가진 사람들|옛날의 메이데이|쇠금(金)자를 쓰는 김씨를 금씨라 하지 않는 이유|사치품 과자|서울은 시골 사람들에게 무서운 곳|설날에 떡국을 먹는 이유|매와 개는 최고의 애완동물|수박은 금기 식품, 귤은 진상품|고추 없는 김치, 호나라에서 전래된 후추|인삼 하면 고려 인삼|조선시대에도 운하를?|비단 도배|고급 음식인 잡탕|일제가 만든 좌측통행|금지되기도 했던 감자 재배|조명용으로 사용된 고래의 눈|아이 입양|악귀를 물리치는 불꽃놀이|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지인(知人) 천 명이 쓴 천자문을 선물받은 첫돌|닭은 길한 징조|교통, 운반, 사냥의 수단으로 쓰인 스키|우유가 약?|매를 아홉 대 맞아야 하는 정월 대보름|중국에서 유래된 보신탕|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미워서 만든 떡국|지팡이를 하사받은 일흔 살 노인들|열두 달 열두 가지 떡|온돌방 생활|엄격하게 처벌한 성범죄|왕릉에서 발달한 음식, 두부|촌수(寸數)|환향녀가 화냥년으로|전쟁터에서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장례|바둑을 즐긴 고구려 사람, 바둑 금지령을 내린|세종대왕|기혼 남성의 상징물, 상투|오뚝이, 꾹꾹이 등의 어린이 장난감|고구려의 혼수품은 수의|개화기에 일본에서 전래된 화투|출생의 계통을 표시한 성씨|가족의 호칭인 택호(宅號)|전문적인 이야기꾼인 전기수(傳奇?)|처서 이후 산에서 거풍하는 남자들|남편의 신분이 아내의 칭호 좌우|전쟁터에서 끓여 먹던 청국장|차례(茶禮)|옛날 사람들의 교통수단|옛날의 숙박시설|조상들의 바캉스|신분에 따라 신발도 달라|부여의 5부는 윷놀이의 기원|우리만의 식사도구 숟가락|불을 나누는 한식|귀족 음식인 잔치국수|약으로 사용된 설탕|신분에 따라 달랐던 임금에 대한 배례(拜禮)|역참제도에서 나온 말, 한참|전화기로 삼년상 치른 순종|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당백전으로 방탄복 만들어|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면 성인으로 대접|고기를 먹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금연령|고구려 토속 음식인 된장|옛날 사람들의 평균수명|나라에서 노총각(?)과 노처녀(?)의 혼인을 지원|고상가옥에 산 가야의 귀족|팥장|잡채 판서|밸런타인데이|보쌈은 양반이 노비에게 내려준 음식|아내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짚신|동지에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돈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맛, 전어|여자들에게 최고 인기 상품, 두 갈래 무|남편의 안녕을 비는 봄 쑥떡|차례상의 삼색나물|설날의 세뱃돈은 붓값과 책값|최고급 장롱은 오동나무 장롱|‘짐작’이 술과 관련 있는 말?|하지에는 감자를 먹어|정월 대보름에 부스럼을 막기 위한 부럼 깨기|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파전|‘말띠 해 태어난 여성이 드세다’는 것은 일본의 속설|석류꽃을 지칭한 홍일점|조선시대에 발행한 기념주화, 별전
2장_ 종교·예술·교육
오늘날과 다른 최초의 애국가|옛날의 공소시효|과거시험의 성적 평가|오늘날의 신문인 조보(朝報)|임금에 대한 충보다는 부모님에 대한 효를 중요시|옛날의 대중가요|옛날의 가수인 가자(歌者)|옛날의 군악대|소설과 시의 출판|초등학교인 서당|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옛날 학생들의 시위|시험을 치기 전 먹거나 붙인 엿|과거 합격자의 특전|족보를 만든 까닭|아무나 두드릴 수 없었던 신문고|일요일과 칠요일|변사체를 검시해 사인을 밝힌 조선시대|암행어사뿐 아니라 공무 출장에 사용한 마패|옛날의 신분증인 호패|조선의 전문직 여성인 의녀와 다모|조선의 여인 부대|조선시대의 야동(冶動)|천문과 관계있는 개천절 의식|조선시대의 보석제도|용무늬로 만들어진 범종 고리|관리들의 점수를 매기는 포폄(褒貶)|여기자는 결혼을 해야|옛날의 예능인|궁정화가들의 집합처, 도화서|규방 교육|학교에서 준 혼인증서|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주는 학교|삼년상|과거시험 예상문제집|일본의 영향으로 불길한 숫자가 된 ‘4’|전체 인구의 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던 양반|옛날의 삼심제|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춤인 강강술래|일주일에 두 번씩 별식이 주어진 성균관 유생|조선시대의 스승의 날|과거를 위한 사교육 열풍|수험생을 둔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것|옛날의 성교육|조선시대의 피임법|과거시험에서 커닝하기|과거에서 생겨난 용어 ‘관광’과 ‘압권’|조선시대 이름난 집안의 조건, 불천위 사당|사내아이의 배냇머리로 붓을 만들어|옛날의 책방|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무형극장|초등학교보다 수준 높은 서당의 교재|고구려시대에 벌써 도서관이?|당나귀 바람|기술 유학생|최초의 영세자는 여성|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탈을 쓰고 탈춤을 추는 까닭|영혼불멸 사상|서당 졸업 후 진학 현황|조선시대의 수능|옛날의 영재교육|어른들만의 피규어|형벌에서 나온 말인 ‘도무지’|임진왜란으로 사라진 분청사기 기술|쌍영총과 석굴암|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던 호칭인 ‘선생’|댓글|크리스트교의 전래는 신라시대에|스님은 장인(匠人)|승려들만을 위한 시장인 승시(僧市)|휴대용 불상인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불교신자들은 왜 합장을 할까?|불교에서 온 말인 ‘현관’|불교에서 유래한 고참과 신참
3장_ 과학·기술·천문·의학
태아의 성 감별|억울하게 죽은 귀신 때문에 생기는 질병|군사 장비로 사용된 연(鳶)|실존 인물인 홍길동|2000년 전부터 사용한 나침반과 의학용으로|사용한 자석|기상관측대인 첨성대와 서운관|앙부일구와 자격루|아라비아 숫자를 대신한 산가지|옛날의 통신 방법|조선시대의 로켓, 신기전|현대의 과학기술로도 풀 수 없는 에밀레종의 제작 기술|옛날의 냉장고|고인돌의 50톤 덮개돌을 어떻게 옮겼을까?|관리가 되려면 구구단은 필수|환경오염 방지시설인 물챙이|혜성은 반란의 예고편|삼국시대의 태풍 관측|김만중의 지구구형설|한반도에서의 지진과 화산 폭발|달력에서 함께 사용한 음력과 양력|옛날의 조명|유기농법의 농업|민간요법으로 사용된 인분|적조현상|고종의 성묘를 위해 만들어진 전차|봄비는 ‘일비’|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망종 보기’|시대의 고민덩어리, 황사
4장_ 제도·법률
조선시대의 군의관인 심약|성곽에 웬 대나무|조선시대의 소방서, 금화도감|모내기의 금지|탈해왕은 대장장이의 아들|동이(東夷)는 오랑캐|개방형 교도소|엄하게 처벌한 간통죄|임기 마친 수령에게 주던 전별품|한강을 건널 때의 운임|조선시대에 벼슬할 수 있는 나이|우리나라의 명약인 우황청심원|자연이 먼저 알아차린 나라의 변란|광혜원을 설립한 이유|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십간십이지의 의미|서양보다 앞서 만든 비행기|세계적인 도자기 기술과 활자 기술이 전승되지 않은 이유|한강에 놓인 배다리|소는 노동과 재산 축적의 수단|조선시대에도 UFO가 있었다|기상 오보는 바로 처벌|유리 대신 기름종이로 만든 세계 최초의 온실|수의사 역할도 했던 일관(日官)|한련초로 머리 물들여|오등작제도|옛날 관제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말|관청 용어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말|여든 살이면 무조건 관직을 내려|옛날의 서머타임제|대마도는 조선 땅|잡색군과 예비군|서재필 박사가 만든 식목일|가짜 뉴스의 제공자|금주령|오늘날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은 장애인|토지를 사고팔 때 거래 사유를 적어야 계약 가능|민정문서|임진왜란에 참전한 흑인 용병|통행금지 실시|공신녹권과 공신상훈교서|우리나라만의 연호 사용|옛날에도 변호사가 있었을까|관리의 탄핵|백성은 지배층에 봉사하는 존재|관기의 임무|서양보다 앞서 실시한 여론조사|상관이나 윗사람을 함부로 고소하면 위법|여군이 있었던 가야
5장_ 경제생활
조선시대의 어음|노비의 매매 가격|서명 대신 그려넣은 좌촌|개성상인의 활약|조선시대의 토지거래허가제|옛날의 주식, 고본|고금리 대출은 처벌 대상|‘땡전 한 푼 없다’에서의 땡전은 당백전|화폐위조범은 중죄인|돈행이 아니라 은행|기업 부도, 판셈|노비의 봉급|그림으로 나타낸 상호|옛날의 공익 복권인 십층계|행상의 면허증|수입대체 상품인 상감청자|소송료로 지불했던 질지(作紙)|소금을 차지해 동아시아를 지배한 고구려|주판셈|시전상인과 허시|관리의 봉급|서원에서 고리대금업을?|고려시대에 절에 주었던 양조권|최초의 은행 대출자의 담보는 당나귀
6장_ 정치·군사·외교
광해군은 최고의 외교전략가|삼국시대가 아닌 가야까지 사국시대|신라가 아라비아인의 영원한 이상향|수양제의 백만 대군이 패한 까닭은|백제 근초고왕은 해외 식민지 건설|해외에 군대를 보낸 고려와 조선|서자 차별은 모자라는 벼슬자리 때문|사대정책은 당당한 외교정책|외국어 몰입교육을 실시한 조선|철을 차지하려고 고구려를 침입한 당나라 태종|간도는 우리 땅|중국의 동북공정|우리나라를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 『하멜표류기』|신라의 장보고는 국제무역의 개척자|개혁적인 승려들의 모임, 땡추|일본과의 무역마찰로 일어난 임진왜란|대외 관계에서 쓰인 공식 언어|붕당정치는 오늘날의 정당정치|미륵신앙이 깃든 매향(埋香)|태극기의 탄생|삼국시대에 시작된 지역 대립의 역사|여유로운 충청도 사람들의 성격|우리나라의 승리로 끝난 임진왜란|징병제의 시초, 경당|위만조선이 중국의 식민지?|옛날 군인 봉급|대통령의 상징인 봉황|최초의 사회주의 경제학자 정약용
7장_ 궁중 생활
사치를 위해 장사에 나선 고려 왕실|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의 아버지, 대원군|왕권을 상징하던 물건|왕의 묘호인 ‘조’와 ‘종’의 의미|‘조’도 ‘종’도 아닌 임금의 호칭|고려시대 임금 묘호에 ‘충’이 들어간 이유|임금의 똥이 꽃이래?|내시의 거세|화성 건설의 DVD|도리도리 짝짜꿍은 왕족의 교육 방식|조선시대 내명부의 등급|임금은 모든 궁녀들의 남편|왕이나 왕비의 목욕|금혼령|농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던 친경과 친잠례|조선의 왕릉|태묘|임금의 이름자는 함부로 쓰면 안 돼|전하와 폐하|매화틀|조선시대 임금에게 많았던 부스럼과 피부병|추녀 밑에 설치한 부시|왕의 친인척 부정을 막기 위한 출가|조선시대 임금들의 바쁜 일상|조선의 의술|대령숙수와 잔치 음식|풍수 영향으로 장남보다 차남이나 3남이 정치를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