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향기
모든 세상이 정지되어 있는 틈에, 죽어가는 남자와 그를 지켜보는 사내만이 각각의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선글라스를 벗은 남자의 표정은 싸늘했다. 그의 눈빛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의 죽음을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길을 가다 우연히 개미 한 마리를 밟은 것처럼 그는 무덤덤했다.
“도……도와 주세요!”
바로 그 때, 소녀가 외쳤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기계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는 남자의 동공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수많은 군중 사이로 소녀와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남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소름이 끼쳤다.
죽은 사내를 끌어안고 오열하는 소녀의 시선은 정확히 그를 향해 있었고, 마치 그를 붙잡고 그에게 말하듯 애원했다.
“우리 아빠 좀 살려 주세요, 제발…….”
애절하고 고통스러운 소녀의 간절함에,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남자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소녀의 시선을 피해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섰다. 하지만 조금 전 마주쳤던 소녀의 눈빛이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그의 심장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딱 한번 마른 침을 삼키고는 건물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몸을 실어 그곳을 벗어났다.
세상의 끝과 마주한 듯한 소녀의 커다란 두 눈이 사내의 얼굴을 스쳤다. 소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움켜쥐고 자신의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뜨거운 눈물이, 죽어가는 사내의 뺨 위로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