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볏단마다 단단히 묶여진 슬픔마다
이른 새벽 소리들이 가만히 들려온다...
깊이 누워 있는 논의 쓸쓸한 과거
숫돌에 낫날을 세우며 하루를 여는
오늘도 나는 어둠을 낫질한다..
나란히 누운 건답 어딘가에서
수물수물 살아 움직이는 풀소리
방죽 너머 우리가 지평 너머
달구지에 볏단이 실릴 때
우우우 아주 깊고 깊은 황토
저 소리들은 어데서 들려오는 걸까...
빈농의 마을 우리집 헛간에 쌓여
병든 어머니 기침처럼 눕는 벼,
문득 절량(絶糧)의 평야 위에 눈물이 되어
혹은 꿈이 되어 더 먼 시간 속으로
훨훨 날아가는 뜸부기 몇마리
그리고 아주 조금씩 저 논의
갈증을 부배해 주던 지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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