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집
북방적 정서를 기조로 하여 우리말의 매끄러운 운율감을 살리고 일제하의 민족 현실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대표적 리얼리즘을 보여준 시인 이용악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수난의 역사를 객관적 통찰력을 가지고 문학에 형상화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민족문학의 길이라 할 때, 시의 영역에서 이러한 과제를 가장 진지하게 탐구한 시인이 이용악이다. 그의 시세계는 식민지 시대 북방 유랑민의 비극적 삶 및 해방의 격랑 속에서의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열망과 귀향이민의 모습을 깊이 있는 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시가 어떻게 현실을 담아낼 것인가?라는 물음에 하나의 귀중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용악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발생했던 국내외 유이민(流移民)의 비극적 삶을 깊이 통찰하고, 이를 빼어난 시적 감수성과 튼튼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작품화한 시인이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막혀 40년이 넘게 논의조차 할 수 없었던 그는 월북 작가들에 대한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30, 40년대 우리 시문학사의 빈약한 공간 속에 우뚝 자리잡게 된 위대한 민족 시인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화 정답게 핀 바닷가
너의묻엄 작은 묻엄앞에 머리 숙이고
숙아
쉽사리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에
검은 구름이 모혀든다
네애비 홀러간 뒤
소식 없던 나날이 무거웠다
너를 두고 네어미 도망한 밤
흐린 하늘은 죄로운 꿈을 먹음었고
숙아
너를 보듬고 새우던 새벽
매운 바람이 어설궂게 회오리쳤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