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10년 3월부터 인문학을 ‘일상생활 속에 심고, 대중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학문적 뼈대인 역사·문학·철학을 전공한 학자와 문인, 대중이 함께 매월 두 차례 우리 역사 속의 주요 인물들의 삶의 현장을 답사하고 서로 체험을 교감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인문학 대중화 사업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진행된 강의와 답사의 결과물이다.
‘노인(路人)’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야말로 나와 관계없이 무심코 길 위를 스쳐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길은 사람을 소통시켜 주는 길이 아니라,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의미 없는, 무관심과 무감동의 길인 통로에 불과하다. ‘노인’은 옛말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말이다. ‘노인’은 지금 더 많이 존재할지 모른다. 바쁘고 쪼들린 일상생활, 그 속에서 일상화된 무관심과 무감동은 현대판 ‘노인’을 양산하고 있다.
그러나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자와 대중을 묶어주고, 이 땅 방방곡곡에서 인간의 향내를 피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했던 수많은 선인을 되살려 현재의 인간과 묶어준다. 나아가 ‘길 위의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와의 교감을 활성화 해, ‘노인(路人)’을 해방시키고 그들 사이를 소통시켜주는 신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일찍부터 출판과 강의를 통해 역사의 대중화나 대중과의 소통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 관심이 ‘길 위의 인문학’ 기획과 운영위원의 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질과 효용, 물질과 문명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이 시대의 조류 앞에서 인문학의 가능성과 실용성(대중성)이 무엇인지는 필자만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의 지속된 관심사의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인문학이라는 속성 자체가 그렇듯이 현실보다는 이상, 외향보다는 내면을 강조하다 보니 사변적이고 엘리트 중심의 학문으로 머물면서 대중과 사회로부터 괴리되는 현실을 낳았다. 흔히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는 외부보다는 이같이 인문학 자체의 속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내부의 문제에서 유래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따라서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위기를 해소하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길 위의 인문학’은 내부로부터의 위기를 해소하려는 시도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재미와 유익’의 인문학
인문학은 서구의 경우 인문주의에서 유래한다. 15, 16세기 무렵 중세의 교회 중심적 사고에 반발해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의 사상에 주목하면서, 인간성을 중시하고 문화적 교양의 발전을 위해 일어난 사조이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적인 저작에 주목하고, 이것을 번역하고 보급하는 데에서 인문학이 시작되었다. 동양의 경우 인문학은 인류사회의 문화, 인간의 도리와 질서, 예악(禮樂)의 가르침, 즉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현의 저작을 읽고 탐구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동서양의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인문학은 일차적으로 주요 고전과 같은 텍스트를 분석, 비판하는 고단한 작업이 수행되었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자체가 어렵고 딱딱한, 때로는 메마른 학문으로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인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사한 사람들은 ‘잘 몰랐던 선인들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되어 더욱 재미있고 유익하다’거나,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돌아온 느낌’, ‘살아 숨 쉬는 교육’, ‘드라마보다 더 생생한 우리 조상의 문화유산 현장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했다. 이러한 반응을 보면, 인문학을 통해 대중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삶의 ‘재미와 유익’으로 요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학이 고전의 해석과 재발견이라는 본질에도 충실해야겠지만, 인문학을 통해 ‘재미와 유익’을 찾으려는 대중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인문학자들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감동과 느낌’의 인문학
오늘날의 인문학은 인간과 세상을 보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내면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 세속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도덕성을 강조했다.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인문을 살펴 천하를 교화해 풍속을 이루게 한다’는 동양적 인문학의 전통, 교화(敎化)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사대부 군주 등 통치 엘리트들이 주체가 되어, 백성의 풍속을 바로 잡는다는 교화적이고 일방적 자세이며, 이는 ‘위로부터 주어진 인문학’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대중은 인문학을 통해 ‘감동과 느낌’을 중시하고 있다. 감동과 느낌이 있을 때만이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성찰로 나아간다. ‘감동과 느낌’의 인문학은 일방적이고 교화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며, 가르치고 배우는 자가 서로 소통하는 친화적인 인문학이 되어야 가능하다.
-‘여유와 관조’의 인문학
현대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의 본질을 탐구하거나, 그로부터 이뤄진 인간세계를 분석해 미래의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을 추구함으로써 현재의 인간과 세계에 정신적인 풍요와 여유로움을 제공하는 학문 분야이다. ‘여유와 관조’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인문학자에게 요구되는 자세이자 덕목이다.
퇴계 선생은 마음공부를 ‘함양(涵養)과 체찰(體察)’이라 했고, 남명 선생은 ‘안으로 밝히는 경(敬), 밖으로 끊어 자르는 의(義)’를 통해 산수와 인간세상을 보려 했다. 다산 선생은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씀, 신중한 동작’의 네 가지 원칙 위에서 자신과 세상을 마주했다. 이러한 선인들의 자세는 ‘여유와 관조’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으로 인간 속세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상을 달관(達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기본 명제를 잠시 잊고, 지나치게 자기 만족과 자신의 학문세계 속에 안주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 본다. 참된 인문학은 ‘여유와 관조’를 지닌 인문학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으며, 그래야 ‘여유와 관조’를 통해 삶의 풍요를 느끼는 대중이 나타나고 그러한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대중들이 생각한 인문학은 인문학자들의 생각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대중들은 좀 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피부에 와 닿는 인문학을 요구한다. 문화유산과 역사 인물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감하고, 일상의 삶에서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얻으려 한다. 인문학은 그러한 콘텐츠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문학자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과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와 세계의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욕구도 달라지고 있으며, 인문학의 콘텐츠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필자는 그 해답의 하나로 인문학에서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를 아우르는 통찰의 인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 《길 위의 인문학》은 그런 점에서 통찰의 인문학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저자소개
저자 : 구효서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94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한국일보문학상, 2005년 소금가마니로 이효석문학상, 2006년 명두로 황순원문학상, 2007년 시계가 걸렸던 자리로 한무숙문학상, 2007년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으로 허균문학작가상, 2008년 나가사키 파파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등과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슬픈 바다》, 《낯선 여름》,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남자의 서쪽》,《내 목련 한 그루》, 《정별》, 《몌별》, 《애별》,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인생은 지나간다》, 《인생은 깊어간다》가 있다.
저자 : 김도연
강원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고,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과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눈 이야기》가 있다.
저자 : 박종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 중세사회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심여자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거쳐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고려시대 부곡제 연구》, 《5백년 고려사》,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안정복, 고려사를 공부하다》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고려 부곡제의 구조와 성격, 고려시대 촌락의 기능과 구조, 12, 13세기 농민항쟁의 원인에 대한 고찰, 12세기고려정치사 연구론, 고려시대 외관속관제 연구, 고려 중기 대외정책의 변화, 한국사의 중세기점과 중세화론, 한국 고대의 노인(奴人)과 부곡, 조선 초기 부곡의 규모와 존재 형태, 이색의 당대사 인식과 인간관 등 40여 편이 있다.
저자 : 한승원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했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목선(木船)이 당선됐다. 저서로는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폐촌》, 《포구의 달》, 《내 고향 남쪽바다》,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희망사진관》 등과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까마》, 《시인의 잠》, 《우리들의 돌탑》, 《연꽃바다》,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화사》, 《멍텅구리배》, 《초의》, 《흑산도 하늘길》,《추사》, 《다산》, 《원효》, 《보리 닷 되》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 : 함성호
1990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했다. 저서로는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과 티베트 기행산문집 《허무의 기록》이 있으며, 만화비평집 《만화당 인생》과 건축평론집 《건축의 스트레스》가 있다.
저자 : 황병기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와 강진군의 학관협약에 의해 설립된 강진다산실학연구원에서 파견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산박물관 개관 공동준비위원장과 지방공무원 연수 책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에 다산학술문화재단 다산학술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동양철학의 세계》(공저), 《조선의 주자학과 실학》(공저), 《다산 정약용 명언림》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다산 정약용의 역상학(박사논문), 다산 정약용의 인문학 지향의 주역철학, 《제경(弟經)》의 체제 분석과 저작자 연구, 다산의 발길 따라: 아내와 함께한 여행길, 동양사상사에서 다산학의 위상 제고를 위한 시론 등이 있다.
저자 : 신창호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사서(四書)의 수기론(修己論)》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사단법인 유도회(儒道會) 한문연수원 장학생반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중용(中庸)의 교육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전통철학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독해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양사상의 이해》, 《한국사상과 교육윤리》, 《인간, 왜 가르치고 배우는가》, 《수기유가 교육철학의 핵심》, 《공부 그 삶의 여정》, 《사람: 하나를 심어 백을 얻어야》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진시황 평전》, 《공자평전》, 《노자평전》, 《관자》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이이화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봉직하였고, 성심여자대학교 등에서 역사학도들을 지도하였으며, 서원대학교 석좌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전 22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저술해낸 우리나라 5천년의 통사 《한국사 이야기》를 비롯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한국의 파벌》, 《허균》, 《우리 겨레의 전통생활》, 《인물로 읽는 한국사》(10권) 등이 있으며, 편서로는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30권)가 있다.
저자 : 전우용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인 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상명대학교 강사와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서울상업사》(공저), 《청계천: 시간, 장소, 사람》(공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공저)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종로와 본정: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 식민지 도시 이미지와 문화현상 등이 있다.
저자 : 정민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시 미학을 쉽게 풀어 소개한 《한시 미학 산책》과 《청소년을 위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펴냈다. 조선 후기 산문에 관심을 두어 박지원의 문장을 꼼꼼히 읽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이덕무의 청언 소품을 감상한 《한서이불》과 《논어병풍》 등을 잇달아 간행하고, 새를 회화와 문학의 코드로 읽은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2권)을 펴냈다. 또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사유 체계를 화두로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성대중 처세어록》을 발표했다.
저자 : 최석기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전번역원 상임연구원을 수료하였고 전문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송원시대 학맥과 학자들》 등이 있다.
저자 : 한명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외국어대, 한신대학교, 국민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강사와 규장각 특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로 2000년 제 25회 월봉저작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광해군대의 대북세력과 정국의 동향, 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유형, ‘재조지은’과 조선후기 정치사 등 40여 편이 있다.